2009년 06월 17일
김광현, 진화의 시작(을 기대하며)-
세상에 태어나 눈을 뜬 이후 스포츠에 관심을 가져본 역사가 없다. (지금 이 순간을 제외하고) 중학교 시절, 친구들이 한창 고대 VS 연대 대학 농구에 열광하며 ‘우지원과 결혼을 하겠다는’ 야무진 꿈을 꾸고 있을 무렵에도 난 ‘어떻게 운동선수를 저렇게나 좋아할 수 있을까’하며 신기한 눈으로 그들을 바라볼 뿐이었다. 나에게 있어, 스포츠라는 것은 ‘굳이 쓸데없이 땀을 뻘뻘 흘려가며 하는 비효율적이고 깔끔하지 않은 것’ 정도로 인식되었다. 물론, 내가 제일 싫어하는 과목도 체육이었다. (지금은 수행평가라고 불리우는 실기시험 점수는 C로 점철되었다.)
그러던 내게도 전환점이라는 것이 찾아 왔다. 작년 여름, 집 밖으로 나가기도 싫을 만큼 덥던 그 8월, 난 베이징 올림픽 중계를 하루 종일 보면서 즐겁게 여름을 보냈고(스포츠를 아무리 싫어하는 사람에게도 국대 경기는 재미있다. Plus 같은 시간대를 사용하는 나라에서 올림픽이 열린다는 것은 정말 흔치 않은 행운이리라-), 야구 대표팀의 예상 못한[?] 선전 때문에 야구 경기를 꽤나 많이 보게 되었고, 차츰 차츰 야구라는 것이 어떻게 흘러가는 것인지 대강이나마 알게 되었다. 한때 K가 종이에 그림까지 그려가며 설명해주었어도, 경기장에 한두 번 가서 직접 경기를 봤어도 “Safe(세입!)”의 의미도 제대로 모르던 내가(너무 심한가?;;) 중계를 반복해서 보다보니 조금씩 감을 잡게 된 것이다.
하지만 물론 이 때만 해도 난 아직 ‘야구’라는 거대한 영역의 울타리 바깥에 머물러 있는 경계인이었다.
대반전이 일어난 것은 올해, 2009 WBC 이후였던 것 같다.
이쯤에서 잠시 내 성격을 돌아보는 ‘삼천포 타임’을 가져야 할 것 같다. 성격이 매우 급하고 나밖에 모르는 이기적인 나이지만, 이런 내 성격 저변의 근간은 “연민”이라는 한 단어로 가득 차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기본적으로 강하고 잘 나가는 분들에게는 무관심한 내가 약하고 힘없는 이들에게는 한없이 마음이 쓰인다는 것, 이걸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엄연한 사실인 것을 어쩌랴. (그나마 강한 자에게 약하고, 약한 자에게 강한 것 보다는 100배 낫다고 스스로 위로하고 있다.)
이런 내가, WBC 때 ‘김광현’이라는 한 선수에게 관심이 쏠렸다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사실인지도 모르겠다. 아, 물론 그의 준수한 외모와 멋진 투구폼, 속마음이 그대로 들어나는 솔직담백한 표정 -비록 그게 포커페이스를 유지하는 게 유리한 투수라는 직업에 있어서는 아킬레스건이라고 할지라도-, 화려한 삼진 실력도 한몫했지만 관심의 시작은 ‘연민’이었다. 참고로, 내가 현 프로야구 팀에서 제일 관심을 갖고 응원하는 팀은 ‘히어로즈’이다. 이유는 굳이 쓸 필요가 없을 듯-
WBC 열풍이 사라지고 나는 이따금 들리는 스포츠 뉴스에서 ‘김광현 2군행?’ 등의 머릿기사를 보면서 이런 추락도 있나 싶었다. 한때 신격화된 존재가 범인(凡人)들에게 뭇매를 맞고 있었다. 물론 그 때까지는 큰 관심은 아니었다. 여전히 나는 제대로된 야구룰을 몰랐다.
그러던 어느날, 우연히 TV에서 야구 중계를 보았고, 선발이 김광현이였다. 결국 2군행은 불발에 그쳤는지, 단 며칠만에 올라왔는지 그는 다시 1군 무대에서 선발로 출전을 하게 된 것이다. (아마도 4월 즈음, 시즌이 막 시작되던 때였던 것으로 기억된다. 어떤 팀과의 경기였는지는 기억도 나지 않는다.) 그 때 화면에 잡힌 그의 얼굴, 아마 그게 내가 야구 ‘관람’에 발을 들이게 된 도화선이 아닐까 싶다. 올림픽 때 TV 화면 가득히 잡히던 그의 얼굴을 기억한다. 어리고, 세상의 힘든 모든 것들이라고는 모를 만큼, 포수의 신호에 언제나 ‘아니오’보다는 ‘오케이’라는 표정으로 미소를 담고 고개를 끄덕이던 해맑은 얼굴. 허나 그 날 내가 만난 얼굴은 작년의 그 얼굴이 아니었다. 머리는 짧고, 피부는 스트레스의 탓인지 예전엔 안 보이던 트러블 자국이 가득했으며, 볼살이 사라졌고(상당히 초췌해 보였다), 일단 무엇보다도 눈빛이 어두웠다. 내 ‘연민’에 발동이 걸리는 순간이었다.

그 이후, 나는 김광현이라는 선수 개인 외에도 히어로즈라는 팀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고, 야구경기를 보기 시작했고, 야구 룰을 하나하나 흡수해 나갔다. 이 와중에 놀라울 정도로 김광현은 재기에 성공했다. 5월 5일 어린이날에는 모 스포츠 기사에서 ‘빛을 던졌다’라고 표현했을 만큼(이 표현, 매우 적절했다) 멋진 피칭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문제는 그 이후였다. 그 날을 제외하고는 내가 그의 선발 경기를 시청할 때마다 제구력이 흔들리는 듯 했다. 다행히 위기관리능력을 키웠고, 소화할 수 있는 투구 이닝이 길어져서 자책점은 낮은 편이었지만, 김광현의 선발 경기를 볼 때마다 난 불안했다. 큰 점수가 날 만한 위기 상황이 너무 많이 생겼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연승 행진을 계속했다. (6월 초까지 그는 올 시즌 8연승으로 다승 공동 1위를 달리고 있었다.) 패가 분명해 보이는 경기도 팀 타선 지원 때문에 패로 기록되지 않는 경우가 이따금 있었다. 그래서 그는 ‘운광현’이라는 불명예스러운 별명까지 얻었다. 실력에 비해 결과가 좋다는 것을 질타하는 야구 팬들이 붙인 것이다. 거기다 승리를 위해 타 팀의 에이스는 피해 다닌다는 얘기까지 듣게 되었다.
하지만 무패 행진은 어제, 6월 16일 히어로즈 전에서 끝났다. 그리고 ‘운광현’의 ‘운’도 끝났다. 아니, 오히려 운이 지지리 없었다고 해도 될 것 같다. 드디어 운이 바닥을 쳤다고도 할 수 있겠다.
1회 초, 요즘 타력이 불을 뿜는 히어로즈 타자들에게 연속 안타를 맞고 그는 한 이닝 동안 대략 35개에 달하는 공을 던져야 했고, 결국 3점이라는, 그로서는 어마어마한 점수를 내줘야 했다. 난 아무리 한 팀의 에이스라도 저런 기세가 계속 된다면 심리적으로 너무 위축되어 2, 3회 안에 강판되는 것도 가능하겠다는 불운한 시나리오를 쓰고 있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2회, 3회 ... 7회까지 김광현은 단 한 점도 더 내주지 않은 채 타자들을 들여보냈고, 한 이닝 당 투구 수는 10개 남짓. 이런 광경은 오히려 최근 그의 선발 경기에서 좀처럼 보기 힘든 장면이었다. (심지어 해설가도 ‘평소보다 더 잘하는 것 같다’라는 얘기를 했다.) 결국 7회까지 던지고 3실점. 결국 퀄리티 스타트는 달성했고 히어로즈의 타선은 꽁꽁 묶여 버렸다.
문제는 그 이후. 뒷문을 책임지기 위해 나온 이승호가 폭투하며(기록상 8회의 폭투;;) 3점을 더 줬고, SK의 타선은 결코 살아나지 못했다. 김광현은 더 이상 운에 기대지 못하게 된 것. 결국 그 누구도 확신하지 못했던 이 날의 경기 결과, 히어로즈가 SK를 상대로 6:3 승리를 거두게 되었다.
자, 그렇다면 김광현은 작년 8월 이후 계속 이어오던 13연승을 마감하고 패전투수가 되었으니 안타까워해야 할까? 글쎄, 선수 개인으로 본다면 밤잠 못 이룰 만큼 분하고 아쉬울지도 모르겠다. 1회를 제외하고는 그렇게 잘 던졌는데 타선의 협조를 얻지 못했고, 마무리가 제대로 되지 않아 패전투수가 되었으니 말이다. (그것도 10달 만에 첫 패)
하지만 나는 어제의 히어로즈 전 첫 패가 그에게는 진화의 시작점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동안 운이 그의 화려한 실력을 가렸지만, 어제 비로소 그 법칙이 깨졌기 때문이고, 그건 분명히 긍정적이기 때문이다. 이제 김광현은 다시 비상을 꾀해야 할 일이다. WBC 이후 누구도 상상할 수 없는 속쓰림을 겪었을 그에게 필요한 건 그 어떤 누구도 피해가지 않는 확실한 실력을 갖추는 것이다. (혹자는 기껏 국제대회에서 한번 실패한 것으로 힘들다고 하냐며 비난을 서슴치 않지만 당해보지 않으면 모르는 법. 게다가 사람마다 성격이 다르고 상황이 다르고 과거의 경험이 다른데 똑같은 반응을 보이는 것도 있을 수 없는 일. 또 그렇게 별거 아닌 일이였다면 WBC 이후 봇물처럼 쏟아진 비난 여론 역시 문제가 아닌가-) 물론 김광현 투수의 기본 실력이 대단한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그동안의 불안한 피칭에서 보여주었던 흔들리는 면모를 개선하고, 어제 2회 이후의 모습처럼(1회 3실점이라는 그 대재앙같은 위기 속에서 그렇게 잘 던지는 건 분명 운도 아니고 우연도 아니고 실력이었다.) 위력적인 피칭을 이어간다면 분명 우리나라를 대표할 수 있는 좌완투수로 거듭날 수 있을 것이다. 게다가 그의 나이, 이제 21세. 통산적으로 투수의 전성기 나이에 미치려면 한참 멀었다. 물론 너무 어린 나이에 온갖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것이 부담이 되어 그의 발목을 잡을 수 있는 것도 사실이긴 하나 이런저런 시련들을 통해 분명히 그는 진화하고 성장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할 것이다.
분명히 어제 히어로즈 경기는(난 히어로즈라는 팀과 김광현이라는 선수에게 모두 연민, 다시 말해 애정이 있기 때문에 보는 내내 마음이 불편했다) 김광현 선수에게 있어서는 WBC 못지 않게 큰 의미를 가질만한 것이었다. 다소 혼란스러운 순간이 찾아오겠지만 쉽게 떨쳐내고 새로운 도전을 시작해주기를 바란다. 
가능하다면, 그의 진화는 이제 시작될 것이다. Impossible is nothing. 즉, 가능하리라.
# by | 2009/06/17 20:46 | ♣ Artistic Minds | 트랙백 | 덧글(2)






